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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터면 열심히 살뻔했다 / 하완

냥작 2020. 3. 25.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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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터면 열심히 살뻔했다 / 하완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 책은 인생에 한 번쯤은 열심히 살아봤던 사람들에게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정말 아무것도 노력해보지 않은 사람에게 '하마터면 열심히 살뻔했다'라고 하기엔... 나도 개인적으로 '청춘이니까 아프다'라는 정말 싫어한다. 최대한 아프면서 살고 싶지 않다. 아직 상처에 익숙지 않고 여린 청춘들은 더욱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20대는 노력해야 되는 건 맞는 것 같다. 놀지도 않고 몸과 마음이 아픈데 모든 걸 참으라는 게 아니라, 인생에 한 번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진지하게 미래를 고민해보는 것 말이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미래에 대한 압박감이 더 커지고 책임에 따라 내가 선택하고 싶지 않은 선택을 해야 할 때가 많다. 적어도 20대는 청춘이니까 라는 말을 핑계로 이것저것 해볼 수 있으니까. 20대라도 열심히 살아보는 게 좋지 않을까. 이미 인생에 가장 열정적으로 살았던 20대가 지난 나한테는 꽤 흥미로운 책이었다. 열심히 일해봤던 사람들은 공감하는 게 많을 것 같다 (내가 열심히 살았다는 건 아니지만)

 

 

 


1부. 이러려고 열심히 살았나

노력이 우리를 배신할 때
-무라카미 하루키의 데뷔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열심히 노력했다고 반드시 보상받는 것은 아니다.그리고 열심히 안 했다고 아무런 보상이 없는 것도 아니다.
-내가 ‘이만큼’ 노력했으니 반드시 ‘이만큼’의 보상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괴로움의 시작이다. 보상은 언제나 노력한 양과 동일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노력한 것보다 작게 혹은 더 크게 주어진다. 어쩌면 아예 보상이 없을 수도 있다. 안타깝지만 사실이다.
-원래 인생은 공평하지 않아. 노력으로 다 된다는 말도 거짓말이지. 알겠어? 네 노력이 부족한 탓이 아니라는 이야기야.

 
열심히 살면 지는 거다
좋거나 말거나 이렇게 사는 사람 하나 정도는 있어도 괜찮지 않나 싶다. 가끔 “너 그러다 큰일 나.”라며 걱정해주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럴 때면 난 “어떻게든 되겠죠.”라며 웃어버린다. 그리고 이건 진심이다.
어떻게든 되겠지. 어떻게든. 케세라세라

내 열정은 누굴 위해 쓰고 있는 걸까
-세상은 우리에게 열정을 가지라고 강요하고 그 열정을 약점 잡아 이용하고 착취한다. 그래서 열정을 함부로 드러내는 건 위험하다. 이런 세상이라면 차라리 열정이 없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열정도 닳는다. 함부로 쓰다 보면 정말 써야 할 때 쓰지 못하게 된다. 언젠가는 열정을 쏟을 일이 찾아올 테고 그때를 위해서 열정을 아껴야 한다. 그러니까 억지로 열정을 가지려 애쓰지 말자. 그리고 내 열정은 내가 알아서 하게 가만 놔뒀으면 좋겠다. 강요하지 말고, 뺏어 가지 좀 마라. 좀!

마이 웨이
-내가 이 나이에 정말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내 나이에 걸맞은 것들을 소유하지 못한 게 아니라, 나만의 가치나 방향을 가지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사실이다.
-내가 욕망하며 좇은 것들은 모두 남들이 가리켰던 것이다. 남들에게 좋아 보이는 것들이었다. 그게 부끄럽다.

우리의 소원은 부자
-흔히 돈은 수단이어야 하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오랫동안 돈이 목적인 삶을 살아왔다. 부끄럽지만 나도 그중 하나였다. 나는 늘 돈을 많이 벌고 싶었기에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같은 가장 중요한 질문들은 제쳐두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길을 좇으며 살았다. 우선 돈부터 많이 벌면 나머지 문제들은 자연스럽게 해결될 거라고 믿었던 것이다.

길은 하나가 아닌데
-세상에는 많은 길이 있다. 어떤 길을 고집한다는 것은 나머지 길들을 포기하고 있다는 이야기와 같다.
-이미 많은 것을 포기했으니 그것 또한 포기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너무 괴롭거든 포기해라. 포기해도 괜찮다. 길은 절대 하나가 아니니까.

아이 캔 두 잇
-포기는 비굴한 실패라고 배웠는데, 그건 사실이 아니다. 현명한 삶을 살기 위해선 포기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실패를 인정하는 용기. 노력과 시간이 아무런 결실을 맺지 못했더라도 과감히 버릴 줄 아는 용기. 실패했음에도 새로운 것에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용기.
-타이밍을 놓치면 작은 손해에서 그칠 일이 큰 손해로 이어진다. 무작정 버티고 노력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지금 우리에겐 노력보다 용기가 더 필요한 것 같다. 무모하지만 도전하는 용기 그리고 적절한 시기에 포기할 줄 아는 용기 말이다.

노력의 시대는 갔다
-세상은 변했는데 그들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읽지 못하고 과거의 가르침만을 준다. 어쩌면 그들도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그렇다. 노력이 잘 안 통하는 것을 느끼면서도 노력 말고는 딱히 할 게 없으니 노력을 멈출 수 없다. 내가 살아온 방식 말고는 아는 게 없으니 후배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뻔하다.
-좀 과격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노력이라는 이데올로기는 실패했다.

득도의 시대
-요즘 일본 젊은이들을 일컬어 ‘사토리 세대’라 부른다. 사토리는 ‘깨달음, 득도’라는 뜻인데, 말 그대로 어떤 꿈이나 욕망 없이 현실에 만족하며 득도한 사람처럼 살아간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사토리 세대는 자신의 선택으로 득도의 길로 가게 된 것이 아니다. 선택할 것이 이것밖에 없어서다. 그야말로 ‘뜻밖의 무소유’ 신세다.

청춘의 열병
-그때 내가 느낀 것은 인생은 내가 생각한 대로 되지 않을뿐더러 내가 아무리 고민해서 무언가를 선택해도 그 선택이 무의미해지는 순간들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마치 열심히 한 방향으로 노를 젓는데 커다란 파도가 몰려와 나를 다른 곳으로 데려다 놓은 기분이었다.
-청춘의 열병을 앓던 시절, 나는 내 선택에 따라 앞날이 완전히 달라질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매 선택에 신중했고, 겁이 났다. 이 선택이 맞는 선택일까? 잘못된 선택이면 어쩌지? 잘못 선택하면 인생을 망칠 수도 있잖아. 최선의 선택, 후회 없는 선택을 해야 해. 물론 그런 생각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지만 모든 것이 나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생각은 참으로 오만한 생각이었다. 내가 아무리 이쪽으로 가려고 해도 큰 흐름이 나를 저쪽으로 데리고 가는 일이 더 많다. ‘내가 다른 선택을 했어도 결국 지금과 비슷한 모습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계단의 시작과 끝을 다 보려고 하지 마라. 그냥 발을 내딛어라.
_마틴 루터 킹

-결과는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너무 자기 자신을 괴롭힐 필요는 없지 않을까?
인생의 모든 것을 통제하려 해서는 안 된다. 어차피 통제가 안 된다. 자칫 허무주의로 흐를 수 있는 이 사실 앞에 나는 묘하게 위로를 받는다. 아, 모든 게 내 탓은 아니구나.

잘 그리고 싶어서
자, 우리 힘내지 말고 힘을 빼자. 뭉친 근육을 풀어 유연하게 만들자. 쉴 새 없이 날아드는 펀치를 가만히 서서 맞고만 있지 말고 가볍게 피해보자. 하고 싶은 게 있다면 겁내지 말고 한 걸음 내디뎌보자. 넘어져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일어나 보자.

인생은 수수께끼
-흔히 인생을 수수께끼에 비교하곤 한다. 우리 앞에 놓인 알 듯 말 듯 한 문제를 풀어야 하는 것이 꼭 수수께끼를 닮았다. 저마다 정답을 찾으려 애를 쓰지만, 풀면 풀수록 더 미궁으로 빠지는 것 같다는 점이 이 수수께끼의 함정이다.
-이게 답인가 싶다가도 이내 ‘이게 아닌가?’ 하고 의심이 든다. 정말 정답이란 게 있다면 이렇게 수많은 사람이 저마다의 인생을 끌어안고 절절매지는 않았을 거다. 정답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심각할 필요 없다. 매번 진지할 필요도 없다. 답을 찾을 필요는 더더욱 없다. 농담을 못 받아치고 심각하게 대답하는 것처럼 센스 없게 살고 싶지 않다.



2한 번쯤은 내 마음대로

어른은 놀면 안 되나요

-늙어서 놀면 무슨 소용인가. 나는 지금 놀고 싶은데.
-욕망에 좀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놀고 싶으면 놀아야지. 명분은 그다음에 찾자. 그렇게 놀면서 찾은 두 번째 명분은 바로 ‘올바른 방향을 찾기 위한 잠깐의 방황’이었다. 명분이 좋다. 그래, 이 정도면 다른 사람들 보기에도 설득력이 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고민하니까.



퇴사의 맛

하루의 3분의 2를 자기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사람은 노예다.
_니체



나를 채우는 시간
-영원히 이렇게 사는 건 좀 문제가 있다. 나 역시 영원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을 원하는 건 아니다. 단지 지금은 이러고 싶다. 조금만 더 채워질 때까지. 나는 방전됐던 모양이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야 했고 하려고 애쓰는 동안 다 써버린 에너지를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면서 다시 채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이란 증상이 있다. 충분한 휴식 없이 너무 일에 몰두하다 보니 정신적 에너지를 다 소진해버려 무기력과 우울, 자기혐오 등에 빠지는 증상이다.
-인간은 뇌의 95퍼센트를 과거와 미래에 대한 생각으로 쓴다고 한다.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우리는 현재를 살지만 현재에 집중하지 못한다. 고작 5퍼센트의 뇌로 현재를 살고 있으니 금방 방전될 수밖에 없다. 방전된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더’ 하는 게 아니라 ‘덜’ 하는 게 아닐까? 걱정도 좀 덜 하고, 노력도 좀 덜 하고, 후회도 좀 덜 하면 좋겠다. 그것이 방전되지 않는 지혜가 아닐까?


아직 위로는 필요 없습니다
열심히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세상. 그런 세상은 얼핏 좋아 보이지만, 반대로 열심히 사는 걸 강요당해도 찍소리 못 하는 세상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혼자만의 시간
혼자만의 시간은 다시 돌아오기 위한 여행이다. 잠시 떨어져 바라볼 줄 아는 지혜다. 정말 혼자가 아니라는 것에 감사하게 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나는 혼자 있는 걸 즐길 줄 아는 사람이 좋다. 혼자 있는 걸 못 견디고, 모든 걸 함께하려고 하는 사람보단 혼자서 할 줄 아는 게 많은 사람이 좋다. 그런 사람들이 타인과도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에게서 잠시 떨어져 있을 줄 아는 사람. 혼자 있는 외로움을 잘 알면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혼자 있는 게 편하지만 결국 혼자서 살 수 없다는 걸 아는 사람. 외로움을 충분히 즐기고 나선 다시 사람들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 기꺼이 함께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고 싶다.


 

넌 나고 난 너야

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 겨우 내가 되겠지.’
『비행운』, 「서른」 중에서


 고독한 실패가
-검색하면 후기가 쏟아지는 세상이 되어 확실히 편리해졌다. 그리고 거기에 의존하는 만큼 실패도 줄었다. 하지만 실패가 줄어든 만큼 즐거움도 같이 줄어들었다. 내가 선택하는 즐거움, 미지의 것이 주는 즐거움 말이다.
제목과 포스터만 보고 마음이 설레어 무작정 극장에 들어가 관람했던 영화들. 낯선 동네를 어슬렁거리다 수수하고 단정한 간판이 마음에 들어 들어갔던 선술집. 작가도 모르고 내용도 모르는데 단순히 표지가 마음에 들어 집어 든 책.
그런 것들은 최고의 선택이 아니었음에도 유독 기억에 오래 남아 나를 미소 짓게 한다. 그런 선택에는 무모하고 위험한 매혹이 있다. 그리고 자신의 선택에 대한 믿음과 그 선택에 책임을 지려는 용기가 있다. 당연히 실패할 확률도 높지만 성공했을 때 가지는 성취감도 크다. 그건 누구의 것도 아닌 오롯이 내 것이 된다.
-모두가 한쪽으로 우르르 몰려갈 때 용기 있게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나’의 인생을 살게 된다. 실패해도 좋다. 실패했을 땐 후회하면 그만이다. 어차피 남의 말만 듣고 우르르 몰려갔던 사람들 대부분도 후회하긴 마찬가지다. 안 그런가?



마이 묵었다 아이가
우리의 영혼은 늙어가는 육체에 갇혀 있다. 내 영혼이 아무리 자유롭다고 한들 나이 먹는 것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가끔은 나이를 잊어버리는 것이 좋다. 특히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는 말이다.
 
계획도 목적도 없이
너무 분명한 목표와 목적이 있다는 건 ‘성취’의 영역이지 ‘재미’의 영역이 아니다. 보라, 목표를 향해 낭비 없이 일직선으로 달려가 값을 치르고 물건을 사는 남자의 쇼핑은 효율적이지만 얼마나 재미없는가. 반면 여자의 쇼핑은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다가 원래의 목적도 잊고 마는 무아지경의 재미가 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챙겨야 하는 준비물은 계획표가 아니라 ‘태평함’이 아닐까? 비즈니스도 아니고 놀러 가는 건데 태평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데이트도, 산책도, 여행도, 가능하면 인생도. 목적 없이 우아한 헛걸음으로…….
 

내 속은 괜찮은 걸까
눈에 보이는 것만 신경 쓰는 사람이 되고 싶진 않다. 속도 괜찮은 사람이고 싶다. 그래야 진짜 멋있는 어른이니까. 속을 자주 들여다봐야지. 그런 의미에서 속옷을 몇 벌 사야겠다. 이건 쇼핑이 아니다. 내면을 위한 아주 중요한 첫걸음이다. 진짜라니까.
 
아무것도 안 해서

-내가 선택하고 한 일들에 대해선 결과가 좋든 나쁘든 잘 후회하지 않는다. 하지만 하지 않은 일들은 왜 이리 후회가 되는지 모르겠다. 너무 쉽게 놓아버린 꿈들, 좋아한다는 말 한마디 전하지 못하고 바라만 봐야 했던 사랑…….
인생은 후회로 가득하다. 내일이 되면 또 오늘을 후회하고 있을지 모른다. 후회해도 후회하지 않아도 인생은 굴러간다, 오늘도.
그래. 아아…… 우린 슬픈 거다.




3부. 먹고사는 게 뭐라고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은 뭘까

-‘하고 싶은 일’은 ‘사랑’과 참 많이 닮았다는 것이다.
‘이제부터 진짜 사랑을 찾을 거야.’라며 찾아 나선다고 사랑이 찾아지는 게 아니듯, 진짜 하고 싶은 일도 찾는다고 찾아지는 게 아니었다.
그것은 ‘찾는’ 게 아니라 ‘찾아오는’ 것이었다.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모르겠다고? 괜찮다. 억지로 찾지 마라. 언젠간 찾아올 것이다. 어쩌면 안 찾아올 수도 혹은 너무 미세한 느낌이라 확신이 없을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대단하진 않아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 나가다 보면 어디로 가야 할지 보이지 않을까? 이런 일은 싫다든지, 이런 쪽으로 더 해보고 싶다든지. 그럴 때마다 선택하며 나아가면 된다.

퇴사는 어려워
한 가지 분명한 건, 영원히 회사에 다니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모두 퇴사를 한다. 나는 좀 빨리 그만둔 것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좀 가볍다.

삶의 균형
우리의 삶은 시시각각 변하는 파도와 같다. 파도 위에서 넘어지지 않고 균형을 잘 잡으려면 꼿꼿해선 안 된다. 유연해야 한다. 힘을 빼고 이리저리 휘둘릴 각오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파도에 맞춰 무게중심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쉴 새 없이 옮겨야 넘어지지 않는다. 그 모습을 멀리서 보면 마치 위태롭게 흔들리는 것처럼 보여도 자세히 보면 열심히 균형을 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의 내 삶이 매우 불안해 보일지라도 너무 걱정할 것 없다. 이건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파도를 타는 것이니까.

일이 뭐길래
그래서 누군가는 진짜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지 말라고 충고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도대체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고 아마 어떤 선택을 해도 후회하게 될 것이다. 인간은 욕심이 많은 동물이니까.

돈 벌기 싫다

-영화 <어바웃 어 보이>
삶을 유지하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돈을 번다. 그런데 돈 버는 게 왜 이렇게 힘이 드는지. 하루의 대부분을 일터에서 보내는데도 간신히 삶을 유지하고 사는 정도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할 시간도 없고, 내가 좋아하는 것에 몰입할 시간도 없고, 심지어 다시 일하기 위해 재충전할 시간도 없이 일을 한다. 아니, 그래야만 돈을 준다. 내가 살기 위해 일을 하는 건지, 일을 하기 위해 사는 건지. 이쯤 되면 일해서 돈을 번다는 게 형벌처럼 느껴진다. 노동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 끝없이 돌을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Sisyphos). 이 형벌을 끊을 방법은 정녕 없는 것인가. 우리가 불로소득을 간절히 원하는 이유다.

앞으로 뭐 해 먹고살지
늘어난 수명은 또 어떠한가. 맙소사 백세 시대란다. 은퇴가 멀지 않았는데 퇴직금과 연금만으로 생활하기엔 노후가 너무 길어졌다. 자식들에게 기댈 수 있는 시대도 아니다. 젊을 때 돈을 왕창 벌어놓거나 늙어서도 돈을 계속 벌어야 한다는 이야기니 지속 가능한 다른 밥벌이를 고민할 수밖에. 그래서 시간만 나면 뭘 하며 먹고살까 궁리를 한다.

시도해볼 권리
-꿈이 있다는 건 분명 설레는 일이다. 하지만 꿈을 향해 간다는 건 혹독한 고통의 길이기도 하다. 그 고통을 다 참아 내고 끝까지 가면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어떤 사람은 꿈을 이루고, 어떤 사람은 꿈을 이루지 못한다. 그리고 현실은 후자의 경우가 훨씬 많다.
-애초에 꿈이 생기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꿈이 생겼는데 어찌하랴. 꿈이 생겼다고 꼭 꿈을 좇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이 어떤 고통을 의미하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그 고통을 감당할 수 있는 것도, 감당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한번 시도해보는 걸 권하고 싶다.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기엔 마음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우리에겐 시도해볼 권리가 있다. 비록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이라고 해도 말이다. 꼭 이뤄져야만 의미 있는 사랑은 아니니까.

욜로가 별건가

-욜로(YOLO)라는 단어가 유행이다. ‘인생은 한 번뿐(You Only Live Once)’이란 뜻으로, 미래 또는 남을 위해 희생하지 않고 현재의 행복을 위해 소비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일컫는 단어다.
-지금은 현재의 자유로움과 기쁨을 유지하기 위해 돈을 번다. 참는 것이 아닌 기쁨을 좀 더 맛보기 위한 능동적인 행동이다. 많이 벌 필요도 없다. 지금의 생활을 유지할 정도만 벌면 된다. 검소하게 살면 더 게으르게 살 수 있다.
그렇게 하루하루 이 자유의 기한을 늘려가며 죽을 때까지 자유롭게 사는 것이 목표다.
욜로가 별건가? 현재를 위해 사는 게 욜로라며?

 



4부. 하마터면 불행할 뻔했다

느려도 괜찮아

-나는 느린 만큼 젊게 산다. 느린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남들과 꼭 속도를 맞춰 살아야 하는 걸까? 사람들은 남들과 똑같이 살기 싫다고 말하면서도 왜 똑같이 맞추려고 애를 쓰고, 뒤처지면 불안해하는
-사람은 각자의 속도가 있다. 자신의 속도를 잃어버리고 남들과 맞추려다 보면 괴로워진다. 남들과 다르게 천천히 걷는 것만으로도 남들과 전혀 다른 삶이 된다. 개성이다. 오우, 유니크!

안 되는 게 정상

-우리는 늘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 괴로워한다. 노력을 안 했으면 모를까 나름 열심히 노력도 했건만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 더 괴롭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게 정상이다. 무슨 소리냐고?
자, 어떤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원하고 꿈꾸는 대로 모든 게 다 이루어진다고 생각해보자. 돈이 많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 부자가 되고, 저 사람이 나를 좋아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하고, 누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 누가 죽는다? 그런 능력을 두고 우리는 정상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건 초능력이다.
-어쩌면 내가 선택할 수 있고 이룰 수 있는 건 거의 없는 게 인생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삶이 잘못되어가고 있는 건 아니다. 우리의 삶은 지극히 정상이다. 원하는 대로 다 되지 않는 지금이 정상이다. 괴로워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어쩌다 이런 어른이 됐습니다만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
-내 삶을 고통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꿈꾸던 것들을 잡으려 애를 썼지만 잡히지 않고 자꾸 멀어져만 갔다. 꿈을 이루지 못하면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행복해지기 위해 더욱 노력했다. 하지만 계속 불행했다. 그랬던 내가 최근 몇 년간은 행복하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됐다. 상황이 더 나아져서가 아니라 지금의 나를 부정하며 노력하는 대신 지금의 나를 좋아해 주고 인정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내 삶도 꽤 괜찮다는 것을 인정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작은 것 것에도 행복을 느끼기 시작했다. 겨우 이런 거에 행복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기대에 못 미치는 지금의 내 모습도 꽤 괜찮다고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꿈을 이뤄야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건 착각이다. 꿈을 이루지 못했다고 행복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꿈이 뭐라고.
-꿈꾸던 대로 되지 못했다고 인생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이 삶을 끌어안고 계속 살아가야 한다. 그러니까 이건 관점의 차이다.


타인의 취향
-영화 <저수지의 개들>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한다고 모두에게 인정을 받는 건 아닐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건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걸 해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어차피 결과를 알 수 없다면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하는 게 낫다. 남들의 인정에 목매지 말고 자기 세계에 집중하다 보면 그 세계가 더 단단해져 결국은 사람들도 인정하게 되지 않을까? 끝내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하고 싶은 걸 실컷 했으니 남들의 취향에 맞추려고 노력만 하다 끝내 인정받지 못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내 삶도 드라마 같으면 좋겠다
인생을 100으로 본다면 눈에 보이는 행복한 순간들은 몇이나 될까? 즐겁고 흥분되고 설레고 성취하고……. 그런 순간들은 잘해봐야 20 정도나 될까? 나머지 80은 대체로 지루하고 반복적이고 별일 없이 시시하기 마련이다.
그렇다. 인생의 대부분은 시시하다. 어쩌면 만족스러운 삶이란 인생의 대부분을 이루는 이런 시시한 순간들을 행복하게 보내는 데 있지 않을까? 사소한 것의 가치를 발견하고 시시함을 긍정하는 <오구실>이란 드라마처럼. 전혀 드라마틱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그녀와 나의 인생도 드라마가 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면 지금의 내 삶도 조금은 다르게 보일 것 같다. 내 인생에도 커피소년의 내레이션이 필요하다.
 
보통의 자존감
-높은 자존감이면 좋겠지만 보통 수준의 자존감만 되어도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자존감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이니 말이다.
 
누가 나를 괴롭게 만드는가
스스로를 가장 빨리 불행하게 만드는 방법을 찾고 있다면 ‘비교’를 추천한다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알랭 드 보통의 소설 『우리는 사랑일까』
-세상은 우리가 불행하다고 속인다.
불행하지 않으려면 더 많은 것을 가져야 한다고 속삭이면서.
없던 욕망도 생기게 만드는 것이 자본주의가 굴러가는 방식이다. 그런 자본주의 속에서 속지 않고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속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나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나는 푸르른 초록에서 유한함을 본다. 곧 시들어 사라질 초록이기에 애틋하다. 내가 지나온 계절이기에 아름답다. 젊음이 영원하다면 소중할 이유도 없다.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직접 겪는 지금에서야 뼈저리게 느낀다. 하지만 돌아갈 수도, 돌아가고 싶지도 않다.
-나는 젊은 시절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솔직히 힘들었다. 젊음 그 자체는 좋지만, 다시 그 고통을 겪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젊은 날은 뜨겁다. 속에 불이 하나 들어 있는 것처럼. 에너지가 넘치지만 때때로 너무 뜨거워 괴로운 여름은 지랄 맞게 빛나는 계절이다. 지나고 나면 다 좋아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젊음은 좀 미화됐다. 조금은 쓸쓸하지만 여유를 즐길 줄 아는 지금이 더 좋다.